월스트리트의 늑대 쉽게 무너지는 돈이 삶의 목적인 인간
월스트리트의 늑대는 흔히 자극적인 성공 영화로 소비된다. 돈, 파티, 욕망, 과시가 넘쳐난다. 하지만 끝까지 보고 나면 묘한 공허함이 남는다. 이 영화는 부자가 되는 과정을 보여주지만, 동시에 돈이 삶의 기준이 되었을 때 인간이 얼마나 쉽게 무너지는지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. 이 글은 월스트리트의 늑대를 통해 내가 다시 생각하게 된 부, 욕망, 그리고 우리가 정말 경계해야 할 삶의 방향에 대한 개인적인 기록이다.
처음에는 솔직히, 조금 부러웠다
이 영화를 처음 볼 때는 나 역시 흔들렸다. 돈을 쓸어 담고, 규칙을 비웃고, 남들이 감히 상상도 못할 삶을 사는 모습. 노력보다 요령이, 성실함보다 대담함이 더 큰 보상을 받는 것처럼 보였다. 그 순간만 놓고 보면, 이 삶이 왜 매력적으로 보이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. 현실에서 돈은 선택지를 넓혀주고, 불안을 덜어주는 힘을 가지니까. 문제는 이 영화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는 점이다.
돈이 많아질수록 삶이 단순해지는 게 아니라 왜 더 망가질까
조던 벨포트의 삶은 어느 순간부터 단순해진다. 더 벌고, 더 쓰고, 더 자극적인 걸 찾아 나선다. 인간관계도, 일도, 감정도 모두 돈을 중심으로 재편된다. 이 장면들을 보며 깨달았다. 돈이 삶의 수단일 때는 선택지를 늘려주지만, 목적이 되는 순간 삶을 갉아먹기 시작한다는 걸. 그는 더 자유로워진 게 아니라, 더 큰 중독에 묶여 있었을 뿐이다.
나는 언제부터 ‘얼마나 벌었는지’로 나를 평가하고 있었을까
이 영화를 보며 가장 불편했던 지점은, 나 역시 비슷한 기준으로 나를 평가해왔다는 사실이었다. 이번 달 수입, 남들보다 뒤처졌는지 아닌지, 이 정도 벌어서 괜찮은 삶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. 월스트리트의 늑대는 극단적인 이야기지만, 그 출발점은 우리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. 돈이 기준이 되면, 삶은 끊임없는 비교의 연속이 된다. 그리고 비교는 만족을 허락하지 않는다.
이 영화 속 사람들은 왜 하나같이 불안해 보일까
아이러니하게도, 영화 속 인물들은 세상에서 가장 많은 돈을 쥐고 있으면서도 가장 불안해 보인다. 멈추지 못하고, 쉬지 못하고, 계속해서 더 강한 자극을 찾아 헤맨다. 나는 이 장면들을 보며 앞에서 봤던 퍼펙트 데이즈와 패터슨이 떠올랐다. 적게 벌지만 흔들리지 않던 사람들. 월스트리트의 늑대는 그 반대편에서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. 돈이 많다고 해서 삶의 중심이 잡히는 건 아니라고.
부자가 되는 이야기보다, 더 중요한 반면교사
이 영화는 성공을 찬양하지 않는다. 오히려 끝까지 따라가다 보면, 성공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허약한 기준인지 드러난다. 조던 벨포트는 모든 걸 가졌지만, 동시에 모든 걸 잃는다. 이 지점에서 이 영화는 단순한 범죄 영화가 아니라, 욕망에 대한 경고처럼 느껴졌다. 무엇을 위해 벌고 있는지, 어디까지 가면 멈출 수 있는지 묻지 않는다면, 돈은 삶을 지켜주지 않는다.
이 시리즈의 끝에서, 내가 붙잡고 싶은 기준
노매드랜드에서 시작해, 카트와 플로리다 프로젝트를 거쳐, 월스트리트의 늑대까지 오면서 내 생각은 점점 분명해졌다. 돈이 많고 적음보다 중요한 건, 돈이 삶의 중심에 서 있느냐는 것이다. 나는 더 이상 부자를 동경하지 않는다. 대신 돈에 덜 흔들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. 적게 벌어도 버틸 수 있는 구조, 많이 벌어도 길을 잃지 않는 기준. 이 영화는 그 기준이 왜 필요한지 가장 극단적인 방식으로 보여줬다.
글은 선택지를 넓혀주는 도구라고 믿는다. 월스트리트의 늑대는 나에게 “저렇게 살지 않아도 된다”는 선택지를 열어준 영화였다.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돈을 벌기 위해 자신을 잃어가고 있다면, 잠시 멈춰서 이 영화를 다시 떠올렸으면 좋겠다. 부보다 더 중요한 건, 어떤 사람으로 남을 것인가라는 질문이니까.
![]() |
| 월스트리트의 늑대가 보여준 욕망의 끝 |
