영화 카트가 던진 질문 왜 성실히 일하는데 점점 더 불안할까
영화 카트는 특별한 영웅을 내세우지 않는다. 이 영화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노동자들이다.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고, 맡은 일을 성실히 해내며, 회사의 규칙을 따랐을 뿐이다.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그 모든 전제가 무너진다. 이 글은 카트를 통해 내가 다시 생각하게 된 노동, 안정, 그리고 ‘열심히 살면 괜찮다’는 믿음이 언제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는지에 대한 개인적인 기록이다.
이 영화가 더 아프게 다가온 이유
카트가 유독 아프게 느껴졌던 이유는, 이 이야기가 너무 익숙했기 때문이다. 뉴스에서, 주변에서, 그리고 어쩌면 미래의 내 모습에서 볼 수 있을 것 같은 장면들. 열심히 일했는데, 성과도 냈는데, 갑자기 “계약이 끝났다”는 말 한마디로 모든 게 정리된다. 이 영화는 배신이나 음모를 강조하지 않는다. 대신 더 무서운 걸 보여준다. 규칙을 지켰음에도 보호받지 못하는 현실. 이 지점에서 카트는 단순한 영화가 아니라, 지금 우리가 서 있는 노동 환경의 보고서처럼 느껴졌다.
나는 언제부터 ‘일하면 괜찮다’고 믿어왔을까
어릴 때부터 많이 들었던 말이 있다. 성실하게 일하면 언젠가는 안정될 거라는 말. 그래서 힘들어도 버텼고, 불합리해도 참았다. 나 역시 그 믿음 위에서 살아왔다. 하지만 카트를 보며 깨달았다. 이 믿음은 언제든 깨질 수 있다는 걸. 영화 속 인물들은 게으르지 않다. 오히려 누구보다 책임감이 강하다.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삶은 갑자기 불안정해진다. 이 장면들은 나에게 묻는 것 같았다. 지금 내가 믿고 있는 안정은 과연 얼마나 튼튼한가 하고.
가난은 일하지 않아서가 아니라, 보호받지 못해서 온다
카트가 가장 정확하게 짚어내는 부분은 이 지점이다. 가난은 개인이 일을 하지 않아서 생기는 게 아니다. 보호 장치가 사라지는 순간, 누구든 쉽게 가난의 가장자리로 밀려날 수 있다. 이 영화 속 인물들은 일을 그만둔 게 아니라, 일할 수 있는 자리에서 밀려난다. 선택권은 없다. 그 결과는 고스란히 개인과 가족의 몫으로 돌아온다. 이 장면들을 보며 나는 ‘자기 책임’이라는 말이 얼마나 쉽게 구조를 가려버리는지 실감했다.
연대가 없을 때 개인은 얼마나 쉽게 무너지는가
영화의 후반부로 갈수록, 카트는 개인의 싸움이 얼마나 버거운지 보여준다. 혼자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이 점점 선명해진다. 그래서 이 영화에서 중요한 건 투쟁의 결과가 아니라, 그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연대다. 나는 이 장면들을 보며 생각했다. 우리가 불안한 이유는 개인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, 혼자서 모든 걸 감당해야 한다고 믿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은 아닐까. 연대가 사라진 사회에서 성실함은 보호막이 되지 못한다.
이 영화를 보고 나서 달라진 나의 기준
카트를 본 뒤, 나는 ‘안정’이라는 단어를 다르게 보게 됐다. 더 많이 벌고, 더 오래 버티는 것이 안정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. 진짜 안정은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상황에서도 최소한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구조에서 온다. 이 영화는 나에게 묻는다. 나는 지금 어떤 구조 위에 서 있는가, 그리고 그 구조가 무너질 때 나를 지켜줄 것은 무엇인가. 이 질문은 꽤 오래 남았다.
카트는 분노를 강요하지 않는다. 대신 외면하기 쉬운 현실을 끝까지 보여준다.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지금 성실하게 일하고 있다면, 그 사실만으로 충분히 존중받아야 한다고 말해주고 싶다. 그리고 만약 불안함을 느끼고 있다면, 그 불안은 개인의 부족함 때문만은 아니라는 점도 함께. 이 영화를 통해 우리가 다시 묻게 되는 질문은 결국 이것이다. 열심히 사는 사람을, 이 사회는 얼마나 지켜주고 있는가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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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카트가 보여준 일하는 사람들의 현실 |
